김추자 정미조와 함께 여가수 트로이카로 1970년대를 이끌었던 최고의 인기가수에서 기약없는 수많은 시련과 아픔을 겪어야만 했었던 지난 시간들
하지만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노래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놓지 않았던 아름다운 그녀 가수 이수미
2021년 9월 4일 안타까운 소식으로 그리운 그녀 가수 이수미 여고시절 전성기 부터 고향 나이 프로필, 파란만장 인생,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안타까운 나이 까지 꼼꼼하게 준비했습니다.
가수 이수미 가족 고향 (+ 안타까운 나이) 지금 시작합니다.
목포여고 3학년 재학 중 출전했던 '목포KBS 노래자랑대회'에서 5주 연속 우승을 이뤄내며 19살 나이였던 1969년 '당신은 갔어도'를 발표했던 그녀
이후 1970년 예명 이수미 로 '때늦은 후회지만'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가수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던 그녀는 1972년 그녀의 인생곡 여고시절 의 메가 히트를 통해 폭발적인 사랑을 받으며 단번에 1970년대를 이끄는 대표 여가수로서 자리매김했습니다.
허스키하면서도 애절함이 담긴 목소리로 흔들림없이 펼쳐내는 무대의 자신감으로 대표되는 가수 이수미
한 해 동안 가장 뛰어난 활동을 펼친 남녀 신인가수에게 시상하는 '낙엽상'을 시작으로 TBC 7대 가수상, MBC 10대 가수상, TBC 최고 여자가수상 의 영예를 품에 안았던 그녀였습니다.
1952년 1월 25일 생으로 전남 영암군 출신 고향 이수미 학력 목포여자고등학교
가수 이수미 본명 이화자 로 1969년 '당신은 갔어도' 데뷔 이후 1970년 예명 이수미 로 '때늦은 후회지만'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가수로서의 행보를 이어갔으며 가수들의 권익 보호에 관심을 갖고 대한가수협회 이사와 감사직 등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1973년에는 대천해수욕장에서 피습 사건을 비롯해 5공 시절 사회정화활동 징계에 이르기까지 본인 스스로도 "많은 시련도 있었음에도 묵묵히 가수의 길을 걸었다"고 고백할만큼 파란만장했었던 그녀의 인생
낮에는 한 화장품 회사의 홍보사원으로 백화점에서 근무를 하고, 해가 지면 밤무대에 올라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다시 멋진 재기를 꿈꾸며 음악을 놓지 않았었던 그녀의 지난 시간들
지치고 힘들었던 그녀의 마음을 위로하고 응원하며 힘이 되어줬던 가족
“신앙생활을 하며 고아원에서 봉사활동을 했는데 그때 지금의 수양딸인 정은이를 만났어요. 아이가 한참을 망설이다 제게 ‘엄마’라고 불렀을 때의 기쁨을 잊지 못할 거예요."
가슴으로 낳았다는 딸에게 행복한 가정을 선물해주고 싶었던 그녀에게 찾아온 사랑 '천사표 남편' 이라 부르는 지금의 남편 배제동 이었습니다.
남편이 전처 사이에 낳은 딸 정아 까지 함께 1997년 결혼과 함께 네 식구가 행복한 가족이 되었다는 고백
“프러포즈는 제가 먼저 했어요. ‘남은 인생 허비하지 말고 나랑 합쳐 아이들을 자매로 만들고 평생 봉사하며 살자’고 했었어요."
투병 중이던 상황에서도 신곡 '별이 빛나는 이 밤에'(안선영 작사, 이동훈 작곡, 최춘호 편곡)를 발표하며 여전히 뜨거운 노래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었던 그녀
너무나도 안타까운 나이 로 이제는 하늘에 별이 된 그녀 그곳에서는 편안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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